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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편지

제 목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추모글

  • 작성자김원식
  • 작성일2014-07-07 13:28:36
  • 조회수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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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을 그리워하는 추모의 글

아버지 당신이 저희 곁을 홀연히 떠나 가신지가
오늘 49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아직도 아버지 몸을 문지를 때의 따 슨 체온이 제 손 끝에 남아 체 식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일곱이레라니 시간이 참으로 무심할 따름입니다.
불쑥 불쑥 아버지 당신이 생각 날 때 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 건 왜 입니까?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다 드리지 못한 사랑을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 런지요.
세월이 가다 보면 마음도 무뎌 지겠지만
지금은 무심이 잊혀 질까 두렵습니다.

이 風塵世上에 태어나 얼마나 행복하게 살다 가셨느냐고 감히 물을 수가 없어서
평생 지고 계셨던 무거운 짐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가시게끔 보내드리는 게
도리라 생각 했습니다만
이제야 생각해보니 한번가시면 다시 올수 없는 이별을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냥 보내 드린 게
가슴에 恨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께서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가신지 세이레 날
미국에서 큰 손자 종필이 손자며느리가 아린이 대리고 귀국하여 아버님을 찾아가
생전에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 한 것이 마냥 죄송스럽다면서
술잔 올리고 한 큰절은 받으셨지요?
그리고 4살 증손녀 아린이 증조할아버지께 엄마 따라서 술잔 올리고
어른처럼 드리는 큰절도 잘 받으셨습니까?
다녀와서 아린이 술잔 올리고 왕 할아버지께 인사드린 후
술 퇴주까지 스스로 했던 얘기를 어머니께서 들으시고는
얼마나 좋아 하시던지, 대견해 하셨습니다.

국가는 아버지 당신이 나라를 구한 護國英雄 임을 잊지 않고
국장에 준하는 엄숙한 장례절차로 안장을 도와주었습니다.
생전에 마지막 안식처로 국립 顯忠院에 뭍히고 싶다 하셨던 곳으로 가셨으니
국가의 보살핌과 하늘나라의 축복 속에서
이제는 나라걱정 자식걱정 그만 하시고 부디 편안하게 永眠 하십시오.

아버지 당신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쫒기 듯이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에 끌려가 온갖 고생 다 하시다가 오셨고, 되찾은 나라가 百尺竿頭의 위험에 처하자
UN군으로 편입되어 6.25전쟁에 참전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영웅이십니다.

아버지
당신은 나라 잃은 苦痛과 설움을 哀歡으로라도 얘기하지 않으시고,
전쟁터의 武勇談 하나라도 당신이 영웅이었다고 자랑한번 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獨立運動家 후손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총리 후보가 되어
우리 민족은 무식하고 게으른 무지렁이라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은 自業自得 이었다고 하데요.
그리고 일본사람은 근면하고 친절해서 본받을 것이 많아
다행이도 우리가 따라서 이만큼 살게 됐었다고도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청소년 징용에 끌려갔다 오신 얘기를 제게 해주시면서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끼친 害惡이 너무 크고 많은데도
정작 우리는 이상하게 일본 백성은 근면하고 친절하다면서
아픈 기억들을 애써 잊고 덮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며,
해주신 얘기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후손들에게 꼭 아버님 말씀을 남기고자 여기 몇 자 적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와 소련이 修交를 한 후
사할린 동포들의 얘기가 세상에 밝혀지면서 제게 들려주신 얘기였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나라의 관심 밖에서 고생스럽고 쓸쓸하게 고국을 그리다 타국에서 恨을 품고 죽어갔을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면서 아버지 당신도 저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을 수도 이었다면서 당시를 回想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강제로 징용에 끌려가신 곳은 사할린 비행장 건설현장 이라 했습니다.
힘든 중노동에 동원된 장정들은 철조망으로 울타리가 처진 비행장 내부 깊은 곳에 일본군의 감시 속에서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된 상태에서 천막 막사를 치고 비행장 건설현장 노동에 동원되었고,
아버님과 같은 청소년 징용자는 비행장 입구에 자리 잡고 노동에 동원되어 외부의 사항을 그나마 지켜 볼 수 있었는데,
일본이 전쟁에 패전하여 降服을 한 후에도 우리 징용자들에게는 이를 숨기고
사할린에 거주하는 자국민 일본 민간인 가족들을
일본 본토로 계속해서 배로 철수시키는 걸 보고서야
이상을 감지하고 우리 징용자들도 고국으로 보내달라고 하였으나
일본인 만 철수를 시킬 뿐 도와주지 않아
마지막 배를 점거하다시피 하고서야
사할린을 빠져 나올 수 가 있었다며
당시 급박 했던 상황을 설명 하셨습니다.

일본사람들 철수하는 걸 바라보면서
우리 징용자등이 돈을 모아 일본인의 배를 구하여
사할린을 벗어나려는 징용자들에게
일본인 선장은 밤에 승선을 시킨 후
사할린 섬 안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일본 땅이라고 속이고
사할린 깊숙한 곳에 내리게 하여
많은 우리 징용자들이 사할린을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면서,
일본정부가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라면
일본 민간인들은 조선이나 점령지에서 狐假虎威 하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 조선 민족 말살 정책의 선봉대였었다고요.

철조망 안쪽에 가친 노역자들은 일본의 패전 소식을 마지막까지 모르고 있다가
소련군이 점령한 후에야 일본이 패망한 소식을 알았으나,
다시 소련군의 포로로 붙잡히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일본인들은 관동 대지진때 수많은 우리 민족을 학살한 것도 민간이었고,
이전 전시 때나 일본 패망 후에도 우리 민족을 짐이라 여기고 여러 곳에서
수장은 물론 학살하여 만행을 지우는 일들을
일본 민간인들도 눈도 깜짝이지 않고
서슴없이 저지르는 민족이라고 했던 말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패전 후 오랫동안 전쟁을 치른 나라치곤 전쟁 장애자가 없었다고 했지요.
왜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요?
당신도 6.25전쟁 상이 용사였기에 同病相憐 때문 이었습니까?
당시 일본은 패전국으로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 장애자는 애물단지였겠지요!
그래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자기들 형제를 거추장스럽고 혐오스런 장애인이라고
한데 모아 태평양 한가운데 수장 시키고도
모든 국민이 아닌 척 모르는 척 함구하는 나라 민족이
우리가 말하는 친절한 일본인이라고요.

중국 같은 大陸을 통치하던 큰 나라 왕들도
세상의 中心에 중국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통치자들조차
감히 하늘이 무서워 天子나 皇帝로 낮춰 칭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자국의 왕을 살아있는 신이라며 감히 天皇이라 부르는걸 보면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뻔뻔한 민족임을 알고들 잊지 않아야 할 터인데도
이리가 쓴 양탈을 경계치 않고 보듬으려 고들 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그렇게 해서 길거리 미화시켜 좀 잘 살다 보니
또 옛날 생각이 나는지 일본은 지금 戰爭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일본을 본보기로 삼고 살아야 한다고들 하니
이러다 우리 후손들 또 아버님처럼 강제 징용에 끌려가는 게 아닐까요?

아버님 그런데 지금 사회 지도자층에 있는 사람들은
왜 자꾸 이제 옛날 일은 잊고 좋은 일만 생각하고 앞으로 나가자 고들 하는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강제 징용에 끌려가 죽은 사람들은 말이 없기 때문에 증거가 없다며
일본은 책임을 회피하고 한일 보상은 끝났으니 우리정부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고
전쟁 중에 벌어지는 범죄는 일본 입장에서는 영웅 행위였다면서
승전국 미국도 아무 말이 없는데 누가 감히 일본을 건드리느냐며 부리는 일본의 꺼덕거리는 모습을 보아서인지,
아니면 同病相憐의 안타까움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스라엘 사람이 한국 사람은 너무 모든 걸 빨리 잊고 포기 하는 것 같다면서
지금도 이스라엘은 자국민을 죽이고 숨어사는 전범자들을 지구 끝까지 찾아다니며
죄 값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면서
이를 밝히는 건 일본이 아니고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하데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포기하고 일본인더러 너희들은 우리보다 잘사는 선진국이니 양심껏 알아서 해결해주라고 처분만 바라보면서
몽니나 부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마디 한 거겠지요.
제3의 외국인 눈에 비치는 우리 모습을 볼수 있는 양심의 거울은 어디에 없을까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이러하니 걱정되어
살아서는 눈뜨시고는 차마 못 보셨을 터인데
현충원에가 계시니 이 꼴 저 꼴 안 보셔서 참 다행이라고 소자 생각 해봤습니다.

아! 그리고 아버지, 며칠 전 종익이 색시 예정이가 아이를 가졌다고 좋아라하면서
어머니께 "할아버지께서" 점지해 주신 선물인 것 같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아버님이 좋은 일 했다고" 좋아하시면서
49제 날은 꼭 아버지께 가서 칭찬 해주겠다고 해서
오늘 아버님 뵈러 어머니도 함께 오셨습니다.
어머님도 건강상 자주 못 찾아뵈니 오늘 어머니하고 懷抱 많이 푸십시오.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너무 오래 떨어져 적적하시고 보고 싶으셨던지
아버지께서 꼭 어머니 모시러 오겠다고 하셨다 면서
어머니도 아버지 곁으로 갈수 있냐고 물의시더니,
아버지 곁으로 갈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 하셨답니다.
그리고 제게 아버님 젊어서 참 인물이 좋으셨다고
자랑하시기에 아버지 영정 사진을 보여 드렸습니다.
잃어버린 왼쪽 눈을 찾아 드리고 온전한 본 모습을 보니
손자들도 모두 잘생긴 할아버지 자랑이 대단하답니다.
아버지 손자들이 할아버지 자랑하듯
저도 아버님 자식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아버님 생전에 마음속에 간직만하고 드리지 못한 사랑을
오늘 이곳에 두고 가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2014년 7월 5일 불효자 큰아들 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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