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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백선엽장군에 대한 친일파프레임을 현충원에서 씌어야하겠습니까?
- 작성자김영혜
- 작성일2020-07-17 13:36:51
- 조회수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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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교생들이 청산리 전투가 1940년대에 일어난 것으로 이해한다고 합니다. 사실 청산리전투나 봉오동 전투같은 독립군들의 큰 전투들은 1920년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1921년 6월 발생한 '자유시 참변'으로 만주와 연해주 지역의 독립군이 '전멸'했기 때문입니다. 자유시 참변은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 세력이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군 세력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기록마다 사상자가 다르지만 학계에서는 980여명이 학살당하고 1800명이 소련군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다고 말합니다. 이 사건이후로 만주(간도)지역 독립군은 그야말로 씨가 말랐습니다. 간신히 탈출한 일부 독립군들은 그후 중국내륙으로 들어가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합류하거나 모택동의 팔로군에 가담합니다. 백선엽, 박정희 소위가 관동군 장교로 임관하던 1940년대의 만주는 독립군을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힘든 그런 시기였습니다. 오히려 '항일'이란 이름을 단 산적들이 일본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조선인들까지 약탈하고 아녀자들을 겁탈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군 88여단에 가담하기 전까지 바로 이 산적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사실은 학교에서 안가르칩니다. 대학의 사학과 수업에서도 다루지 않습니다. 이걸로 논문을 쓰려고 하면 교수들이 거부합니다. 백선엽 장군이 관동군 장교로 임관한 것은 사실입니다. 소위 혹은 중위가 무슨 큰 권력이 있고 지휘권이 있습니까. 왜 탈영해서 독립군 혹은 광복군에 합류하지 않았나라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태어날때부터 일제의 식민지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왜 일본군 장교가 되었는가라고 친일파라 낙인 찍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학계에서조차 이런 직업선택까지 친일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여 이들 일본군 장교출신들은 친일파라 단정하지 않습니다. 일제시절 관공서에 근무한 공무원이라 해서 모두 친일파라 부르지 않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소위 진보라는, 좌파라는 사람들은 마치 백선엽이나 박정희가 독립군 때려잡기 위해 혈안이 된 가증스런 매국노처럼 묘사합니다. 역사적인 사료나 사실을 입증할 증거도 없습니다. 그냥 일본군 장교였으니 친일파인 것입니다. 그런식이라면 1960년대, 70년대 장교로 임관한 분들은 유신의 앞잡이고, 80년대 임관하신 분들은 군부독재의 앞잡이가 되는 셈입니다. 역사적인 사실과 객관적인진실은 백선엽의 친일논란은 사실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런 편향적인 행태를 호국선열을 모시는 현충원이 해야 되는 일입니다..
정녕 남침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을 학살하고 군인들을 죽인 김원봉의 업적이 대한민국을 절체절명에서 살린 백선엽장군보다 낫다는 겁니까? 현충원과 보훈처가 북괴의 기관입니까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키는 기관입니까?